BEYOND THE REALITY!
현실을 너머, 미국땅을 밟고 살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사람들이 모두가 입모아 외치는 한계를 넘어 각자의 색깔을 다시금 외치는 각양각색의 그들의 스토리를 담아냅니다! :)
오늘의 인터뷰어: 초록색 무지개 이민상🌈
"어쩌다보니 이곳에..?"
군산시 옥서면 옥봉리에서 그림 좋아하던 내가,
어느새보니 미국 업계에서 대우받는 비주얼 이펙트 아티스트가 되었다?
어쩌다보니 날라온 미국에서의 삶 정착기!
*다음은 인터뷰어와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편집자의 편의에 맞춰 일부 편집한 내용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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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기 전까지의 삶은 어땠어?
🙆♂️:난 미국에서 나랑 같은 지역에서 온 사람을 본 적이 없어. 군산시 옥서면 옥봉리 작은 동네에서 미국 오기가 쉽지는 않거든. 애초에 미국은 물론이고 유학생, 비자, 대학교 뭐 아무것도 잘 몰랐어. 시골에 살다 보니까 학원도 없었고, 정보나 이런 것도 얻기가 힘들어서 그냥 있는 대로 살았거든..
그러다가 중학교쯤이었나? 내가 항상 게임, 아니면 영화를 좋아했어. 그래서 그 당시에 저런 거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는 있었던거 같아. 게임을 하면서도 ‘이런 그래픽 어떻게 만들지?’, 영화 보면서도 ‘특수효과 신기하다’ 하면서 ‘저런 거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계속 있었지. 근데 그게 직업이 정확히 뭔지 모르잖아? 게임 그래픽 이런 거 하고 싶었던 거니까, 게임 만들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단순히 게임 제작자? 프로그래머가 돼야겠다고 중고등학교 때 생각했어. 뭣도 모르고 그냥 게임 만들면 그런거 하는 거겠지~ 한 거야 단순하게~
근데 어쩌다가 구체적인 비주얼 이펙트라는 필드에 관심을 갖게 된 거야?
🙆♂️:내가 무슨 블로그 같은거 보다가 어떤 한국 사람 블로그를 보게 됐는데 미국 Blizzard라는 게임회사에 다니시는 분이었어. 그분이 거기서 일하시면서 자기가 작업했던 거 올리셨는데, 근데 그 사람이 올린 것들이 그동안 내가 하고 싶던 거였던 거야!!
이름도 기억나 “박재욱”이라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그때부터 그분 블로그도 보고, 그분 싸이월드, 네이트온 같은 거 찾아보면서 그분이 한국 CG모임 이런 거 만들면 가입하고 그랬었는데,,, 그분이 올리는 미국 생활, 삶, 작업을 보면서 “나도 저런 거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거지.
근데 그분 학교를 보니까 AAU라는 학교를 나왔더라고. 그래서 난 적어도 ‘저 학교 나오면 저 사람처럼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지. 그리고 계속 그 학교 이름이 내 머릿속에 잊히지 않고 계속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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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관심을 갖게 되고 그 학교 준비를 바로 시작한 거야?
🙆♂️: 근데 꿈이랑 현실은 달라. 꿈은 어쨌든 영화, 게임 그런 걸 만들고 싶어 했지만, 현실은 당장 고등학생이었고, 그림 그리는 거 좋아했으니까 그림 그리는 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게 최선이었지. 그래서 미술 학원을 다니면서 미대를 준비했어. 입시미술.
그때는 그냥 막연하게 그림이 좋아서 그림 학원을 다니고, 미대를 가고, 가서는 뭐 디자인과 가야겠다? 이런 생각이었어.
군산대 산업디자인과 들어가서 공부하는데 내가 원하는 거랑 너무 다르더라고. 거기서는 게임이나 그런 걸 배우는 건 아니었던 거지. 근데 어떡해? 군산대는 게임 그래픽 뭐 그런 것도 없었고, 이게 싫진 않으니까 이걸로 먹고살아야지 했는데, 디자인과가 나중에 선배들한테 들어보니까 되게 박봉이라는 거야. 야근도 엄청 많이 하고 주말에도 출근하고,, 근데 그게 들을 때는 현실감 없게 느껴졌는데 막상 졸업할 때가 되고 현실로 다가오니까 좀 막막했지. 그러다가 군대를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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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에서의 만남, 꿈을 향해 한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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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디자인과로 이미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어쩌다 미국에 오게 된 거야?
🙆♂️:대학 다니다가 군대 갔다고 그랬잖아. 군대에서 레벨 3일 때, 그니까 상병 때였어. 나는 나름 그 사회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였고, 새로운 신병이 왔는데 그 친구가 부대에서 키우던 개한테 물린 거야. 근데 내가 그 신병을 좀 돌봐줘야 하는 상황에서 이름은 뭐냐 뭐 어디서 왔냐 뭐하다 왔냐 물어보다 보니까 유학하다 왔대. 어디서 하다 왔어? 하니까 샌프란에서 하다 왔대. 근데 내 머릿속에는 아까 말했듯이 항상 AAU가 있었단 말이야. 그래서 내가 어? 거기 내가 가고 싶어 하는 학교 있는데! 너 AAU 들어봤냐 하니까 자기 거기 나왔다는 거야.
심지어 걔가 게임 디자인하다가 왔다고 하니까 내가 너무 신기해서 걔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고 그랬지. 그래서 나한테 이것저것 많이 알려줬어.그 학교 가면 영어 수업도 있고, 뭐 커리큘럼 이런 거 저런 거 있고...
이런 것들을 내가 엄마한테 신기하다가 계속 말하고 그랬었는데, 엄마가 그때 나를 많이 지지해 주셔서 유학 준비를 시작해 보자 했던 거지
와,,, 인연이 대단하네. 그럼 유학을 준비할 수 있는 상황 자체는 됐었던 거야?
🙆♂️: 내가 군대 끝날 때쯤 마침 우리 엄마가 하던 식당이 되게 잘 되었어.
호동이네 맛집이라고 그 당시에 누가 블로그에 리뷰 같은 걸 남겼는데, 거기 뭐라고 적혀있냐면 “백반 팔아서 아들 유학 보낸 맛집” 이런식으로 적혀있어 ㅋㅋㅋㅋㅋㅋ
사실, 우리 엄마는 식당 주방에서 계속 일하다가 식당을 차리시고 잘 안되고 이게 계속 반복이었거든? 그래서 나도 모르게 식당은 하면 망하는 거고, 식당 하는 집은 가난한 집이다 이런 이미지가 나한테 있었어. 근데 딱 마침 내가 그 친구를 만나서 학교에 대해서 알게 될 즈음에, 엄마가 한 식당이 처음으로 잘 돼서 돈을 잘 벌 때였던 거야. 그래서 엄마가 내가 계속 이런 거에 관심이 있었던 거를 아니까 학비나 알아보자 해가지고 한국에 있는 AAU 사무소에 상담을 받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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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프란에서 YES만 외치는 군산청년 적응기
도착해서 학교 적응은 잘 했어?
🙆♂️: 근데 막상 가서 보니까 읽는 거는 그래도 좀 읽겠는데 듣는 거랑 말하는 건 너무 다른 거야. 학교 가서 내내 고생했지.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한동안 계속 예스맨이었어. 계속 예스만 하다가? 예스를 하면 안 되는 상황인데? 상대방 반응이 이상하면 그제야 노노노노 그랬지.
한동안 영어를 쓸 때면 등에서 땀이 삐질삐질 났어. 진짜 자신감도 자존감도 뚝 떨어지고 힘들었어. 그렇게 힘들면 미국에서 또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게 또 안되더라. 학교에서 하루 종일영어 듣고, 집에 와서 영어를 또 하기가 쉽지 않더라고.
그래도 학교 열심히 다녔어. 내가 하고 싶은걸 비로소 배우는 거니까 그림도 그리고, 만족도가 1,2년 차에는 진짜 좋았어. ‘내가 내 꿈을 위해 진짜 나아가고 있구나’라는 마음이 들었어.
근데 3년차 때는 결국 좀 지치더라고. 제일 큰 이유는 영어. 내가 아무리 배우고 싶은 걸 배우고 만족도가 높아도, 영어가 늘었다기보다는 영어가 안되는 거에 익숙해지는 상황이 힘들었고, 미국에 사는데도 영어에 항상 자신이 없는 내 모습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
AAU에 입학하고 좋았던 거랑 아쉬운 게 있다면?
🙋🏻♀️: 좋았지. 정말 배우고 싶은 걸 배웠거든. 우리 학교는 1-2학년 때는 기초실습 같은 게 잘 되있어. 아티스트의 기본 기술과 덕목 같은 것들? 근데 3학년이 되고 보니까 실무 경험이나 현장에 쓸 그런 것들을 별로 못 배우고 내가 아는 게 딱히 없는 거야. 내가 실제 필드에 나가서 뭘 할 수 있지라는 의심이 들고, 그리고 4학년이 되고 그 의심이 현실이 되면서 아 이래서 다들 취업은 각자도생이라고 했구나 깨달았지.
난 그냥 학교에서 배운 걸로, 과제했던 거 모아서 프로젝트 했던걸로 포트폴리오를 만들면 취업이 될 줄 알았는데 보니까 어림도 없게 생긴 거야. 딱 보면 내 건 누가 봐도 학생 숙제 같아 보이고,, 그제야 발등에 불 떨어져서 포트폴리오를 준비한 거지. 근데 우리는 보통 “shot/샷” 이라고 한단 말이야. 2-5초 되는 걸 한 샷이라고 해. 보통 그걸 5개를 준비해. 4개는 학교에서 컬래버레이션 했던 것들 넣었고 나머지 1개는 내가 졸업하고 단 하나라도 돋보이는 걸 만들자 해서, 졸업하고 나를 갈아서 만든 1개가 바로 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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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콤한 꿈을 향한 발자국, BUT 취업은 각자도생
그렇게 준비한 포트폴리오로 지원한 결과는 어땠어?
🙆♂️: 그래도 난 이걸로 내가 생각한 회사들 중 적어도 한 곳은 가겠지 했는데 어림도 없었고, 부랴부랴 다른 회사 뭐 있나 찾아보고 이력서 넣고.. 근데 거의 연락 오지도 않았어. 5개월간 아무런 오퍼가 없었어. 그렇게 졸업하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5개월쯤 지나니까 진짜 지치고 렌트비도 너무 아깝고… 내가 능력이 안되는데 억지로 미국에 남아있는 건가 싶더라고. 근데 또 한국 돌아가자니 이 큰 유학 비용에 대해서 이룬 게 없고, 인턴 하나 못해보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한국에 돌아가면 너 뭐하다 왔니 할 거같기도 하고.. 그래도 취업 안되는데 어떡해. 결국 한국행 티켓을 알아봤지.
그때 한국에 돌아갔어?
🙆♂️: 근데 그 즈음에, Frame Store라는 회사에서 인턴 제안 이메일이 왔어. 거기 슈퍼바이저가 내가 전에 죽어라 하기 싫었던 그 1shot 그걸 되게 좋게 봤나 봐.
그리고 거기 가서 3개월간 일하고, 이제는 한국 돌아가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지. 근데 3개월 기간 끝날 즈음에 연장 오퍼가 와서 연장하고, 그 다음에는 풀타임 오퍼를 받아서 풀타임으로 일을 시작했어
지금 계속 말하고 있는 이 회사가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야. 지금 회사 다니면서 F1 비자로 OPT 3년 채우고 거기서 H1 비자까지 지원해 줘서 아직까지 일하고 있지.
H1 비자나 영주권 지원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있어?
🙆♂️: 일단 유학생은 F1 비자로 미국에 오지? 미국에서 최소 1년 이상 학위과정을 마친 유학생은 누구나 OPT(F1 비자를 소지한 미국 유학생들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하는 고용 허가) 를 받을 수 있어. OPT 기간은 1년이고, STEM 분야 전공자는 최대 3년이야. 난 STEM 이었어서 3년 일을 했고, 내가 OPT 기간이 끝날 때 쯤 되니까 회사에서 알아서 H1 VISA를 진행을 해주더라고.
H1 비자는 working visa고, 지원은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지원자를 모아놓고 완전 랜덤으로 돌려서 뽑는 거야. 회사에서 지원만 해주면 지원은 누구나 할 수 있는데, 뽑히는 게 신의 선택이라고 할 정도야. 이거에 기대를 거는 사람은 없지 사실.
그리고 이거를 하려면 회사에서 스폰을 따로 해줘야 해. H1 비자든 영주권이든 회사 입장에서 스폰 해주려면 돈이 많이 들 뿐만 아니라, 그 회사의 텍스 보고나 이런 것들이 추가적으로 검증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잘 해주려고 안하지. 그리고 애초에 처음에 인터뷰했을 때 H1 개런티를 안 해줬어. 나도 가능성이 희박하니까 나도 그냥 인턴도 해냈겠다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거지.
근데 어쨌든 회사에서 감사하게도 H1 지원을 해주고, 기적과 같은 확률을 뚫고 H1비자가 되어서 3년 일했어. 그리고 H1 비자는 한번 더 연장 할 수 있어서 H1 비자로 총 6년을 일할 기회를 얻은 거야. 이제 4년 일했으니 2년 남았네. 그리고 그 다음에 미국에 남고 싶으면 영주권 신청해야 하는데, 감사하게도 회사에서 영주권 진행을 해주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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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살이 벌써 1n년 차, 미국의 컬처?
미국 회사를 다니는 사람으로서 컬처는 어때?
🙆♂️: 난 일단 우리 회사 다니면서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 받은 적은 거의 없어. 지금 생각해 보면 팀원들이 나를 답답했을 거 같은데, 내가 몇 번을 피드백을 이해 못해서 두 번 세 번 미팅할 때까지 그게 안 고쳐졌어도 기다려줬어. 다 나이스했어.
미국 working culture가 한국보다 확실히 chill 한 거 같아. 근데 아시아권이나, 유학생들이 많이 일하는 회사들은 확실히 이런 분위기는 아닌 거 같긴 해. 들어보면, 외국인을 많이 뽑는 회사는 외국인들의 비자 상황 이런 것들을 잘 아니 그것을 잘 이용해서 ‘박리다매’ 비즈니스를 하는 거지. 그래서 아티스트들이 힘든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어쨌든 나는 이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좋았고, 여유로웠고, 재미있었어.
미국에 벌써 1n 차인데도 외국인 신분으로 사는 건데 불안함 같은 건 없어?
🙆♂️: 항상 불안하지. 일단 H1이 운이 좋게 돼서 정말 행복하고 감사했지만, 난 사실 그때 안되면 그냥 한국 가야지 생각했어. 왜냐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거니까, 열심히 해서 인턴하고, full-time job 잡았고 인정받은 거니까.
감사하게도 회사에서 H1을 먼저 나서서 지원해 줬고, 다른 방면도 많이 찾아봐줬어. 정말 많이 날 신경 써준거 같아.
난 그래서 한국에서 미국 온 친구들 중에 취업 안돼서 돌아가는 친구들 있잖아? 그 마음이 너무나 잘 이해돼.
그럼 민상과 같은 친구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줄 수 있다면?
🙆♂️:opt 기간 동안 취업도 안되고, 그 확신 없는 날들이 너무 힘든 걸 알기에,,,
그렇지만 남은 주어진 날들을 최선을 다해보라고 말하는 게 나의 최선인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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